[PRESS] 포용적 디자인에 대해,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 [도서]

글 입력 2019.01.03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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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중학교에 다니던 때, 수업시간에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사회적 소수자들을 배려하여 모두가 편리하게 사용가능한 보편적인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교과서 구석 어딘가에 개념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 후로는 딱히 들어본 적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나 사람도 본 적이 없었다. 어딘가에는 필요하겠지만, 유니버설 디자인이 사실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은 이렇듯 디자인이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외면한 사람들과 그 사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소수자들은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그들을 배려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수고스러움을 감수해야 하는지, 이것이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저자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아마 그 충격적인 피해 사례와 정도, 일상적인 불편함에 대해 알면 놀랄 것이다.

 

 

 

사용자에게 ‘친화적’인 디자인



디자인은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일상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작게는 우리가 입는 옷에서부터 필요한 생활용품, 주방용품, 가구, 가전, 건물, 공공시설 등 누군가에 의해 설계, 기획되지 않은 것이 없다. 디자인이 되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디자인이 중요하며 우리의 생활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늘 좋은 영향만을 주지는 않는다.


편리함도 물론 제공하지만 불편함과 불쾌감을 주는 디자인을 경험할 때면 우리는 그 대상과 설계과정으로부터 배제되었음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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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곧, 사용하는 자의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편리한 생활을 돕기 위한 사용자 친화적 디자인은 누군가에게 한정되어 있던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뒤따라 생길 것이다. 설계자와 비슷한 사용자만을 생각하며 만들어진 제품이나 건물이 아닐지-자신과 다른 사용자의 입장은 생각해보지 않은 결과물이 아닐지-답은 ‘그렇다’이다. 생각보다 일상적인 생활용품, 공공시설, 건물들에서는 소수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디자인이 많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분명히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다.

 

 

 

Defined by Design


 

이 책의 영어 원제이기도 한 Defined by Design은 좀 더 정확하게 책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디자인에 의해 정의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무엇이 우리의 생활환경을 제한하고 정의하고 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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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몸에 맞는 사이즈가 없는 옷, 신발, 체형을 고려하지 않은 속옷. 운동 시 사용하는 헬멧(특히 미식축구), 아이들에게 위험한 유아용 장난감, 손이 닿지 않는 대중교통 손잡이, 장애인의 출입이 어려운 공공시설, 남녀 화장실 수·시설의 차이, 연단의 높이 등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이에 대한 변명으로 제품 회사들이 흔히 따랐다고 하는 기준은 전혀 보편적이지 않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신체 치수, 기득권을 차지한 이들의 편리함을 중심으로 장애인·여성·아동을 배제한 설계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기준일 리 없다. 경험과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한 이기적인 디자인이 판매해도 괜찮은 디자인, 누구나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우리 생활환경에 들어오는 과정에 다양한 사용자의 의견이 반영되기란 매우 어렵고 드문 일이다.

 

 

 

공중화장실에서의 젠더 투쟁



책에서 패션, 제품, 건물 디자인의 수많은 사례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이야기한 것은 다름 아닌 ‘공중화장실’이다. 공중화장실만큼이나 젠더불평등과 권력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없으며, 그만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회적 사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말하기 위해 공중화장실의 역사부터 간단히 되짚어 본다. 공중화장실의 시작은 오래되지 않았다.

 


오늘날은 공중화장실의 젠더 분리를 당연시하지만 이것이 언제나 규준이었던 건 아니다.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분리된 최초의 변기 시설이 등장한 것은 1739년이었다.


...사방이 둘러막힌 ‘여성용 간이 화장실’은 1860년대가 되어서야 설치됐다. 역사적으로 공중화장실은 한 집단에게 특권을 주고 다른 집단을 차별하는 환경으로 기능했다.


- pp.179-180


 

공중화장실은 당대 사회의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중요한 역사적 유물로 젠더분리는 1860년대, 인종차별 폐지는 1964년이 되어서야 인권법이 통과되며 이루어졌다. 또한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통적인 접근 불가 구역이었으며 여성들에게는 육아의 불편함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사실이다. 미국에서 변경된 법안에 따라 여성과 남성의 화장실 양변기를 2:1비율로 설치했을 때-닛산 스타디움 경기장-남성 사용자들의 비난과 이슈몰이는 엄청났다.


콘서트나 경기장 뿐만 아니라 지하철, 공공 시설 등 어딜 가나 여자들은 길게 줄을 서있는 반면 남자화장실의 줄은 거의 없는 편이다. 여성들이 어린 자녀들을 화장실 칸에 동반해야 하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남성화장실에는 기저귀를 갈거나 아이를 동반할 수 있는 화장실 시설이 거의 갖춰져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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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화장실 접근성과 이용 속도가 같아질 만큼 충분한 수의 시설이 필요함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누군가는 웃어넘길 일일지 모르나 이미 한참 전에 해결되었어야 할 화장실 평등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설득한다. 인구의 반이 길게 줄을 서서 화장실을 이용하길 강제하는 것은 미묘하면서도 강력한 성차별 행태이며, 화장실의 설계에 여성들의 니즈는 반영되지 않은 결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가는 분명 생각해볼 문제라는 것이다.

 

 

 

포용적 디자인에 대하여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생리적 욕구 해결을 위한 공중 화장실을 포함하여 이러한 사례는 매우 많다. 쇼핑시설에서의 플러스사이즈 코너, 노인과 아동에게 위험한 에스컬레이터, 어린이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주거환경 및 근린시설 디자인 문제 등이 그 예이다. 저자는 해결책으로 ‘생산 및 설계자의 포용적 디자인에 대한 고려’와 소비자들의 ‘리콜 제품에 대한 관심 및 디자인 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제안한다.

 


“문제는 경제성이에요. 무언가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하려면 돈이 많이 들죠. ...세상에는 모두가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선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인간들은 갖가지 환경에 적응하는 비상한 능력이 있으니까요. 다만 진짜 문제는 이 회색선을 어디에 그을 것이냐는 거죠.”


- p.368


 

접근과 이용의 형평성과 평등을 위해서 디자인을 개선하는 데에는 당연히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 비용 투자를 경제성과 생산성 저하를 근거로 포기해서는 안될 일이다. 세상의 인구만큼 다양한 신체치수와 각자의 상황을 최대한 고려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며, 보편적이고 포용적 디자인이 다수의 편리함과 미적인 가치를 저해한다는 것은 편견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살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포용적인 디자인, 누군가에 의해 특정되지 않은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편안함과 행복을 방해받는 이가 줄어들고 당당히 사용자의 권리를 주장해 불안과 불합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포용적 디자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작은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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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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