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사 예쁜 사랑 노래 3선, 그리고 나의 이야기 [음악]

글 입력 2019.03.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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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시경-연연




나를 자꾸만 부르지 마
내 마음 문턱을 넘어오지마
문을 열고 날 알아버리고
더 힘들면 어떡하려 그래
여기저기 다친 자리인데 못생긴 마음인데
누구도 아닌 너에게만은 보이고 싶진 않아


예전에 아주 잠깐, 혹은 잠깐이라기엔 조금 긴 시간인 한 달 동안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주름진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너는 자신과는 다르게 마치 갓 달궈진 다리미로 다려진 셔츠처럼 곧게 펴진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었다. 너는, 아직 나를 하나도 모르는구나.

물론 서로 알아가기에 한 달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는 항상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예컨대 그의 집에서 나의 집까지는 지하철로 한 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갓 행정고시를 합격한 뒤 임용 전까지의 시간을 즐기고 있던, 무척 여유로워 보였던 그 사람이 첫 데이트 뒤 나를 집에 데려다주지 않았다는 것이 섭섭했다. 전혀 의무를 지울 수 없는 일이지만 여태껏 그런 방식의 연애가 익숙했던 나였다. 두 번째 데이트가 끝난 뒤에는 딱 반절까지만, 세 번째 데이트가 끝난 뒤에는 환승역까지, 도대체 왜 집 앞까지 와줄 수는 없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마치 집에 데려다주는 것이 사랑의 의례라도 되는 양, 혼자 그의 마음을 의심하면서 내 마음의 문을 반쪽만 열기로 결심했다. 그러다가 지쳤다. 둘 중 누가 먼저 지쳤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을 뿐더러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그와 나의 사랑이 피지도 못한 채 엄동설한에 얼어버린 꽃 봉우리처럼 죽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이제 우리는, '우리'라고 지칭하는 것이 민망할 만큼 마주쳐도 인사조차 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성시경의 '연연'이 OST로 나오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라는 시가 나왔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가 무서웠던 건, 시인의 후회가 나의 후회가 되는 일이었다. 포크레인이 쑤시고 간 듯 이미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마음이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폐허의 암시가 나를 급습해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가 내게 확신을 주지 못한 것보다, 나의 지레짐작으로 인한 마음의 빗장이 우리의 관계를 더 경색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절벽인 걸 알면서도 미친 듯이 차를 몰고 돌진할 만큼은, 그에게 빠지지 않았던 것인지도. 사랑이 끝나는 걸 한 가지의 원인으로 규명하려 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다.

예쁜 노래다. 멜로디도, 한 편의 시 같은 가사도, 그 가사가 연상시키는 드라마의 장면도, 부드러운 성시경의 목소리도 모두 예쁘다. 예쁜 것들은 때로 나를 많이 슬프게 한다.



2. 유승우 - 예뻐서




Beautiful day, beautiful love

우리 사랑이 시작된 날

수줍게 멈추는 모든 순간

이게 사랑인가봐

 

Beautiful girl, beautiful love

눈부신 햇살 비추는 하늘 아래

내 눈으로 본 모든 것 중에

니가 제일 예뻤어

니가 예뻐서

 

 

이번에는, 꽤 오래, 혹은 오래라기에는 조금 짧은 시간인 반년 동안 만난 남자의 이야기다. 시험기간에, 몇 번을 빨았는지 이미 다 해져버린 나시와 엉덩이가 보일락 말락 한 짧은 반바지를 입은 채 화장기 없는 얼굴로 공부를 하고 있던 그 날에, 그는 처음으로 나를 만났다. 나에게는 그 날이 첫 만남이 아니었다. 원래 타인의 시선에 둔감한 것도 있었고, 지금은 제목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두꺼운 전공책과 씨름하는 데에 지쳐있기도 했다.

 

공부를 하던 중 그 당시에 꽤 친했던 동아리 오빠와 우연히 마주쳐 인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와 동아리 오빠는 친구 사이였다. 오빠는 그의 성원에 못 이겨 내게 소개를 받아보겠냐는 제안을 했고, 그렇게 우리는 신사 가로수길의 아담한 파스타 집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키가 훤칠했고, 눈썹이 매우 짙으며, 하늘을 향해 높이 치켜든 코가 인상적인, 사람들이 흔히 '잘생겼다'고 수군거릴 만한 사람이었다. 인사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내 마음 전체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느꼈다.

 

연애를 시작하고 처음 몇 주간,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위의 유승우 노래 가사와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아마 그의 눈에 무엇인가 씌어있는 모양이었다. 늘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다. 내가 학교에서 가장 예쁘다는 둥, 다른 날도 예쁘지만 오늘은 더 매력적이라는 둥, 너는 얼굴만큼이나 목소리도 예쁘다는 둥, 나는 점점 그런 말에 길들여져 갔다. 에이 학교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길거리에 나보다 예쁜 사람 진짜 많아, 와 같이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휘저으면서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예쁘다는 말은 정말이지 마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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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그에게 길들여질수록, 그는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기분이었다. 그건 아마 연애의 갑을 관계 같은 것을 들먹여 설명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저 나는 그에게 해주고 싶은 것도, 그에게 바라는 것도 많아졌던 반면 그는 당장 눈앞에 닥쳐온 학점, 학회, 인턴, 취업과 같은 현실적 단어들을 녹여내는 것만으로 삶이 벅찼던 것뿐이다. 길들이고 길들여졌던 누군가와 멀어지는 건 마음이 변해서, 라는 문장으로 표현되기에는 너무도 복잡다단한 문제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아직도 헤어지던 날이 생생하다. 이미 이주일 넘게 연락을 하지 않다가 만난 터였다. 저녁을 먹으러 간 스시 뷔페에서 그는 아무렇지 않게 새우초밥을 입에 쑤셔 넣으며 헤어지자고, 자신은 더 이상 노력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나도 마찬가지라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관계의 끈을 붙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내가 변하겠다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다 이해하겠다고, 한 번만 다시 시작해보자고, 연애하는 내내 내세웠던 자존심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눈물을 글썽여댔다. 그러나 역시 그는 떠났다. 그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하다.

 

이제 그의 얼굴조차 온전한 형태로 떠올리기 힘들만큼 시간이 지났고, 그는 내 삶을 스쳐지나간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가끔, 정말 가끔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던 '예쁘다'는 말은 생각이 난다.



그가 그리운 것이 아니다. 삶에서 우연이든 필연이든 생겨나는 쉽게 잊을 수 없는 순간 속에, 그가 잠깐 발을 들이고 있었을 뿐이다.





3. 마크튭 - Marry Me




비내리는 날엔 우산이 돼주고
어둠이 오면 빛이 돼줄게
추운 겨울이면 난로가 돼주고
더운 날엔 바람이 될게
잠이 들 때까지 머릴 만져줄게
니가 두려울 때마다 꼭 옆에 있어줄게
갑작스런 맘에 문득 떠나고 싶으면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떠나줄게


이런 종류의 글에도 두괄식, 미괄식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 있다면, 이 글은 분명 미괄식이다. 마크튭의 Marry Me 라는 곡은 들을 때마다 내 남자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곡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 100일 정도를 사귀다 헤어졌고, 2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나 대학을 졸업한 지금까지도 함께하고 있는 내 소중한 남자친구. 물론 연애를 하면서 단 한 번도 그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어렵기 때문에, 글을 쓰는 지금도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다니기는 한다. '혹시 나중에 헤어져서 글 전체를 지워버려야 하는 순간이 오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기로 마음먹은 건, 그를 이야기하지 않고 내 사랑의 역사에 대해 얘기하는 건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그가 나를 울린 적이 정말 많아서 어떤 사건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졸업 뒤에 기간제 교사로 작년 한 해 동안 일했는데, 여러 이유로 직업과 성향 사이의 갈등을 느껴 로스쿨 지원을 마음먹은 상태였다. 결국 떨어지긴 했지만, 한 로스쿨의 1차 전형에 합격을 해서 면접을 보러 갔던 날이었다. 불안함에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던 내 마음을 풍경에 펼쳐놓은 것처럼, 그 날은 희한하게 한겨울이 아닌데도 눈보라가 매섭게 쳤다. 꾸역꾸역 택시를 타고 면접장 앞에 내리자마자,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도 면접장 근처라고 했다.

본인이 면접을 보는 것도 아니면서, 그는 평소에 잘 입지도 않는 갈색 코트를 입은 채 오들오들 떨면서 나를 맞았다. 뭐하러 왔어, 하며 어색하게 웃음 짓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면서 잘할 거라고, 너는 원래 말 잘하지 않냐고 조심조심 말하는 그가 사랑스러웠다. 극도의 긴장 때문에 얼마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한 채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교수님들 앞에서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가면서도 이미 망친 것 같다는 느낌에 좌절했다. 내 차례는 두 번째였지만 다른 면접자들이 나올 때까지 단체로 기다리느라 네 시간 정도가 지났고, 나는 터덜터덜, 문을 나서면서 조금 울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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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는 면접장 근처 스타벅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5분이면 갈 거리를 15분이 넘게 걸려 도착한 나는, 그를 보자마자 앞에 철푸덕 앉았다. 힘들어, 맛있는 거 먹자. 점심을 오물오물 먹으면서 내 남자친구만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 날 나는 울지 않았다. 내가 운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우리가 다시 만난지 2년이 되던 날, 그 때 정말 고마웠다고 두 장을 빽빽히 적은 편지를 그에게 건네면서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이토록 사랑해주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해서, 그리고 그의 무차별적인 따뜻함이 내 마음 속에 딱딱하게 응고되어 있던 상처덩어리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게 자꾸만 느껴져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기적이다. 태어난 것도 기적, 살아 있는 것도 기적, 사랑에 빠지는 것도 기적,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기적, 그저 나를 나로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기적이다.



우리는 '기적'이라는 단어를 앞으로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일어난다면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줄 일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고는 한다. 그러나 사실 찾아보면 우리의 삶은 기적 투성이다. 내 남자친구는, 나에게 그걸 깨닫게 해준 보물 같은 사람이다. 혹시 우리가 결혼, 이라는 먼 미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그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남은 나의 모든 삶 오직 그대 여자로 살고 싶어요', 이 가사를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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