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끝내 허기진 내면을 달랠 수는 없었다 – 꼬리박각시

먹어도, 먹어도 내면을 채울 수 없었던 그녀.
글 입력 2019.05.14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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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자막보다 포스터를 좋아했죠. 화장은 보여 주기 위한 거예요! 알겠지만 화장은 일종의 선언처럼 사람들에게 마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나를 잘 보라고, 내 얼굴은 처세를 위한 얼굴이 아니라고. 맞네요. 처세를, 나는, 사는 방법을, 모르니까…… 더는 모르겠어요. 파스티스 한 잔 더 부탁해요.” 그녀가 감정을 드러낸다. 오스카는 그녀에게 그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는 롤라의 덕지덕지 화장한 얼굴 뒤에 감춰진 죽음의 기운을 읽는다. 그 괴상한 얼굴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가 만든 극중 배역 같은 것이다.


- p66.




 

1. 허기진 인간



배가 고픈 것과 허기가 진 것은 확실히 다르다. 전자의 상황에 처했을 경우, 지금 당장 무엇이라도 먹어야 자신의 안위를 보존할 수 있겠지만 후자의 상황에서는 굳이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아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하지만 배고픔의 극에 다다른 사람은 그 고비를 넘기는 순간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 비록 그 상태가 일시적일지라도, 이상한 일이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배가 안 고픈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연출된다. 반대로 허기진 사람은 배고픔의 극치에 도달하진 않아서, 자꾸만 먹을 것이 손에 쥐어지길 바란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배고픈 사람보다는 허기진 사람이 더욱 간절하게 무언가를 먹고 싶어 하는 것이다.

 

롤라는 허기진 사람이다. 그녀는 생사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위급하진 않았으나, 온전히 배부르지도 않았다. 그래서 계속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자신의 허기를 채울 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갈망했다. 온갖 화려한 치장으로 자신의 표정을 숨기고, 여러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으며 성욕을 해소하려 했다. 한 남자가 선물해준 초콜렛의 절반 이상을 순식간에 먹어치웠고, 술에 잔뜩 취한 후에는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분노와 증오를 휘둘렀다. 그녀는 충동의 화신 그 자체였다. 동시에 아주 어린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두르고, 망가뜨리고, 금세 염증을 느끼고 그것을 버리곤 하는 ‘순수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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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도서관 옥상은 어딘가 공허하다.

특히, 혼자 거닐 때면 그 기분이 배가 된다.


  

그녀의 허기는 채워질 줄 몰랐다. 그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어 치웠다. 허기진 사람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허기짐을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음식을 먹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은 후에도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면서 다른 음식의 주변을 배회한다.


롤라도 마찬가지다. 오직 밤을 기다리며 타인과의 성관계를 계속해서 갈망하고, 더욱 화려한 화장품과 강렬한 옷들로 스스로를 감싼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수록 궁금해졌다, 과연 그녀의 허기짐은 언제 채워질지가. 그러나 그녀의 허기짐은 안타깝게도 애초부터 채워질 수 없었다. 매순간 자신이 먹은 만큼을 그대로 토해내었기 때문이다. 롤라의 외로움은 마치 밑 빠진 독처럼 그녀를 감정의 구덩이로 끌고 갔다. 그녀는 지독한 거식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의 아름다움은 망가진 그녀의 내면을 가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은 그녀에게 지옥이었다.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 잘못된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한 것 ‘같았던’ 아버지, 그리고 스무 살 때 자신을 떠나간 첫사랑. 롤라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특히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그녀는 확실히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할 유형의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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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순간의 충동으로 살아내는 하루, 그 하루들이 모여 지속되는 삶


 

그러므로 대부분은 책을 읽으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완전히 미친 여자라고. 충동적이고, 감성적이고, 트라우마와 망상에 시달리고, 그럼에도 평일에는 직장에 다니며 [정상적인] 삶을 인내하고. 마음의 공허를 끌어안고 살아가고, 모든 일과를 마친 뒤에 자신을 찾아올 비사유적인 쾌락을 기다리고. 때로는 목숨을 끊으려는 상상도 서슴지 않는다. 그 누가 롤라의 삶을 두고 건강하다고 말하겠는가. 작가는 마치 롤라의 인생을 대놓고 비난해보라는 듯 그녀의 자아를 작품에서 완전히 망가뜨린다. 그녀에게서 도덕적 책임감과 윤리적 의무, 구성원으로서의 품위 유지와 같은—보편적이라 불리는 인간이 가질 법한 모든 자질을 뺏어버린다.

 

그렇지만 무엇 때문인지 그녀를 쉽사리 비난할 수 없다. 그녀의 얼굴이 마치 누군가를 닮은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얼굴이란 단순히 과도한 치장으로 노화를 숨긴 롤라의 외면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전반을 뜻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스무 살 때의 연인과, 자신의 곁을 너무 일찍 떠난 어머니로부터 그녀는 사랑의 부재를 경험해야만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떠난 이후 그녀를 슬픔 속에 방치하면서, 술독에 빠져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던 아버지는 옛 연인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상태를 악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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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에서 찍은 작품 사진.



“어떻게 하면 사람이 이 지경까지 외로울 수 있는 걸까? 사랑은 사라지고 추억만 남았다. 우리는 떠돌이 짐승, 아니 폐가, 벽을 통과하는 유령들이 무단으로 점유한 지저분하고 텅 빈 집이 되었다. 그런 집에 산다는 건 숨 막히는 일이다. 비인간적이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건 인간적이지 않다. 단 한 사람도 없다."


- p83.


 

이는 그녀에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고, 매일을 죽고 싶다는 일념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데에 일조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로 죽지는 않는다. 자해를 해서 목숨을 끊겠다는 상상을 하긴 하지만, 이를 현실로 옮기지는 않으며 오히려 현실에서의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취직한다. 평일에 그녀는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정상적인’ 차림새를 한 상태로 출근한다. 그리고 잔업을 처리하는 수준에 불과한 따분한 일을 어떻게든 견뎌낸다.


일을 마친 후에, 또한 휴일에 자신이 누릴 육체적인 쾌락과 윤리로부터의 일탈을 떠올리면서. 옛 애인의 환각을 보면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삶을 끝내고 싶다며 아우성치지만, 정작 그녀는 누구보다 충실하게 삶을 살아간다. 순간의 쾌락을 좇으며 근본적인 우울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토해내긴 해도 먹긴 먹으면서 순간의 허기짐을 달래고는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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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는 갓피플.
롤라는
또다시 사다리를 오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는 것 같다.


  

3. 그녀의 얼굴, 그녀의 결핍.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우리의 결핍.


 

실로 현대인,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 차이점을 꼽자면 롤라에 비해 덜 충동적이라는 것 정도. 우리도 그녀처럼 각자의 내면에 트라우마라 불릴 법한, 혹은 그에 준하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그 상처가 자신을 잡아먹을 정도로 덩치를 키울 때도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존재 상태를 회의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왜 사는가, 그냥 죽어버리면 편하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을 유발한다. 그렇지만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이를 티내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아간다. 안과 밖이 같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무언의 결핍으로 인해 괴로워하지만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렇게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욕구와 부딪히면서 어찌 되었든 삶을 살아간다. 무료한 근무나 따분한 공부에 시달리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 일이 끝난 후에 집에 가서 자신이 누릴 안락을 기다리며 삶을 감내한다. 하지만 안락을 누린 후에 자신을 찾아올 또 다른 하루, 또 다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하루를 생각하면 도망치고 싶다. 그래서 쉽게 자신의 피로함을 달래줄 안락으로부터 ‘질려버리게’ 된다. 결국 그 안락의 끝에 위치한 또 다른 절망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휴식을 누리고 싶고 실제로 그것을 누림에도 금방 싫증을 낸다. 어차피 하루는 또 반복될 거고, 나를 둘러싼 삭막한 현실이 바뀌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고 근본적인 사실이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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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반복되고 애써 멀리 도망쳐 봐도 가장 평화로운 순간, 꼬리박각시 나방 떼가 요란한 날갯짓을 하며 다시 나타난다. 보호하고 위로해 줄 엄마의 품은 없다. 그래서 현대인은 저마다 상처 입은 어린아이의 가슴으로 롤라처럼 밤거리를 휘청거리며 비참한 상황을 위로해 줄 치료제를 찾는지도 모른다."


- p175.



그래서 롤라는 우리의 거울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끊임없이 오가는 우리의 불안정함을 극도로 폭발시킨 인간이다. 허기를 적당히 달래서 음식을 열망하는 마음을 어느 정도 잠재우는 우리들과 달리 그녀는 그 열망을 전혀 잠재우지 않는다. 옛 연인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상상 속에서나마 내리꽂고, 공허한 마음을 육체적인 쾌락으로 채우고자 하고, 거친 언행과 폭력을 일삼는다.


실로 그녀는 폭력적이지만 동시에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도 롤라가 될 수 있다. 죽음의 끈과 삶의 끈을 둘 다 잡아당기며 ‘이성의 끈’은 놓을 경우에, 그러니까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기능하는 [척]을 그만둘 순 없지만 그로부터 지나친 환멸감을 느낄 때. 롤라가 그랬던 것처럼 순간의 쾌락을 기다리는, 밤이 오기만을 염원하는 꼬리박각시가 되어버릴 수 있다.

 

그녀는 허기진 내면을 달래는 데에 결국 실패했다. 롤라는 여전히 옛 애인의 환각을 본다. 몇 번이고 그를 상상 속에서 칼로 죽이고 총으로 쏘며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나름대로 성공하고 있다고 합리화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완전히 성공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언제든지 우리는 그녀처럼 밑 빠진 독이 되어버릴 가능성에 몸을 담고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불안 속에서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무너지지 말아야지, 포기하지 말아야지, 조금만 참으면 쉴 수 있어—라는 [격려]를 통해서.


*


결과적으로 작가는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 결핍이라는 허기짐을 조심하라는 당부를 전하고자 했을지 모른다. 그 허기짐에 지나치게 발을 들여놓을 경우, 롤라가 지금도 그러는 것처럼 먹어 치운 것들을 그대로 내뱉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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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의 결핍(?)에 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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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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