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권태와 상실의 늪, 그 위의 롤라 : 꼬리박각시 [도서]

글 입력 2019.05.1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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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박각시
- MORO-SPHINX -


우리는 늘 권태와 결핍을 느끼며 살아간다. 사랑과 정(情), 부와 명예. 그 대상은 각자에게 상이하게 나타나며,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채우고 사유하며 살아간다.


권태와 상실의 늪 속에서 우리는 망각을 원한다. 망각의 방식 또한 각자에게 다르게 나타날 테지만, 술, 담배, 마약, 섹스와 같은 온갖 자극이 우리의 삶을 떠나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다. 우리의 공허함은 종종 잔혹한 폭력성과 혹독한 자기 파멸을 갈구할 만큼 깊고 진하게 악취를 풍겨오기도 한다.




파리의 밤거리 위, 롤라




그만둘 수가 없다. 밤이 오기를 기다리느라 몸에 녹이 슬 것 같다. 푸른 하늘 따위는 그녀에게 아무 쓸모가 없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짝짓기를 하고 인공 조명 주위를 미친 듯이 맴도는 나방 같다.

 

(29p)



꽉 끼는 스커트를 입고 두꺼운 화장을 한 채 파리의 밤거리를 비척거리며 걷는 롤라. 그녀는 섹스를 통해 삶을 연명한다. 퀴퀴한 담배냄새로 찌든 생선가게 남자와 추한 엉덩이를 가진 구두장이, 대상은 그 누가 되든 상관이 없다. 미칠 듯이 공허한 무언가를 잠시나마 채우고 나면, 전리품처럼 그들의 손톱을 빈 통에 모아 보관한다. 죽지 않는 영원한 손톱은,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롤라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그에 대한 충격으로 불행의 연쇄작용처럼 술주정뱅이가 되어버렸다. 20세에는 누구보다 사랑하던 너가 내 곁을 떠났다. 상처와 실연은 삶의 상실이 되어 모든 것을 갉아 먹어버렸고, 남은 건 그저 밤거리를 누빌 수 있는 몸뿐이다. 자신을 탐하는 남자들과의 하루 밤 쾌락을 갈구하는, 내면이 텅 비어버린 ‘몸’뿐이다. 롤라는 비틀거리다 망각의 늪으로 추락해 그 속에서 부유한다. (35p)



롤라는 형편없는 아코디언 연주를 들으며 그날 저녁 네가 한 말을 떠올린다.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일흔 다섯 살이 돼서 봐줄 수 없을 정도로 늙고 추한 모습이어도.” 그녀는 말보다 약속을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네가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연극 대사처럼 외쳤다. “맹세하노라!”


약속은 배신이 되었다.


(61p)



수많은 남자와의 섹스를 하며 수십, 수백 개의 손톱을 그러모으지만, 롤라는 끊임없이 너에게로, 너에 대한 그리움으로 돌아간다. 애처로운 사랑은 모순되게도 순수하다. 그러나 떠나간 너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나는 텅 빈 마음을 채워줄 너를 계속해서 갈구할 것이다.




도브(Dove)



황폐하고 위태로운 삶에 도브(Dove)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름 속 D를 L로 바꾸면 사랑(Love)이 되는데, 그는 아마 그녀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도브(Dove)라는 이름 자체로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지 않은가. 구두 가게의 지하실, 술집 지하의 미니축구테이블에서 원나잇을 즐기던 롤라가 도브와 침대에서 관계를 갖는 모습을 보며 비로소 사랑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 따위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롤라는 지독히 아플 그 끝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사랑이라는 덧없는 천국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는 불안감이 내재되어있다.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구역질나는 공포와 두려움의 악취를 느낀다.


두려움을 겨우 잠재운 채 떠난 도브와의 여행. 겨우 손에 넣은 행복에 도취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마귀 떼처럼 나타난 꼬리박각시는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행복에 대한 사형 집행을 하듯 그녀의 머리 위를 맴돈다.


하늘에서 폭탄처럼 우르릉대는 소란스러운 곤충 떼가 등장하며 평화로운 모습은 사라진다. 곤충들은 입에 달린 거대한 관을 암술에 닥치는 대로 찔러 넣는다. 꽃들과 교미하며 먹어치우고 강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식인귀, 광란에 사로잡힌 짐승 같다. 태양이 수평선을 스칠 때, 바로 그때가 검은 나비와 미치광이 자벌레 나방, 꼬리박각시가 나타나는 시간이다. 그들의 이름은 곧 사형 집행을 의미한다. 스핑크스의 죽은 자[꼬리박각시는 프랑스어로 Moro-Sphinx, 발음상 mort au Sphinx(스핑크스의 죽은 자)와 같다]. 롤라가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스핑크스의 죽은 자를. 내밀한 기쁨은 그녀를 떠나고 이제 이곳에 아름다움은 없다. 행복은 놀림감, 걸핏하면 얻어터지는 동네북이다. 나방은 까마귀 떼처럼 그녀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춘다. (148p)




다시, 일요일



책 속 시간은 소제목으로 나타나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황폐한 일요일은 도브(Dove)를 만나며 제 날짜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 끝은 다시 일요일이다. 롤라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가슴에 칼을 깊숙이 꽂아 넣고, 또 다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한다.


롤라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공허와 권태, 상실감 속에서 살아간다. 잠시나마 온전한 ‘나의 것’이 되었던 도브 또한 나를 떠났던 너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


누군가는 그녀의 생활에 대해, 또는 문장이 담아내고 있는 날 것 그대로의 표현들에 대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구역감과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텅 빈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늘 우리 곁을 맴도는 공허함과 상실감은 그 이유도 방식도 제각기 다르게 찾아오며, 이를 채우는 방식 또한 저마다 다르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갈망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손톱 같은 무언가를 그러모으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한 담배와 술, 섹스와 손톱. 잔혹한 자극을 담아낸 소재들 덕에 그녀의 내밀한 감정선이나 행위를 모두 이해하기란 힘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나’, ‘너’와 같은 인칭이 등장하고, 파리의 분위기를 현실감 있게 표현해낸 데에 있어서 어색함이나 어려움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날 것 그대로의 문장과 표현은 더욱 애처롭고 아프게 느껴졌다. 각자의 삶을 채우고 치료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세상을 살아가는’ 롤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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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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