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걸캅스'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5.2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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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걸캅스’가 지난 15일 박스오피스 1위로 등극하며 심상치 않은 기세를 올리고 있다. 두 여성 형사가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 비공식 수사에 나선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개봉 열흘째인 19일에는 누적 관객 수 100만 명을 기록하며 관객 동원에 있어 호조를 보이는 중이다.

같은 시기 개봉한 기대작들의 막대한 스크린 점유와 이에 비롯한 현저히 적은 상영관 수를 고려하면 가히 주목할 만한 성적이다. 물론 엄청난 흥행은 아니지만, 개봉 전부터 ‘대본이 유출됐다’며 뻔한 내용이라고 비웃음당하거나 여타 흥행 실패작들과 함께 거론되면서 별점 테러까지 행해졌던 냉담한 반응과는 사뭇 다른 전개다. 영화는 손익분기점인 관객 수 180만 명 역시 순조롭게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걸캅스’는 ‘선방’했다. 무엇이 ‘걸캅스’를 보게 했을까?



#영혼_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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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나 ‘여초(여성 중심)’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진 ‘영혼 보내기’라는 문화가 있다. 영화를 보러 갈 수 없어도 예매라도 하여 관객 수를 올려주고 영화에 대한 지지를 표출하는 문화를 말한다. ‘걸캅스’는 이 ‘영혼 보내기’ 문화에 힘입어 적지 않은 관객을 동원했다. ‘영혼 보내기’에서 중요한 것은 영화를 보는 행위보다 관객 수가 높게 기록되는 것이다. 영화 그 자체보다 영화의 흥행을 매개로 하여 공동체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의사를 사회 전반에 표명하기 위해 이뤄지고 있는 문화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걸캅스’일까. 그들은 ‘걸캅스’를 통해 어떤 의사를 표명하려 하는 걸까.

영혼 보내기는 일전에도 이루어진 적이 있다. ‘미쓰백’에서 그랬고, ‘캡틴 마블’에서 그랬으며, ‘허스토리’와 ‘항거’에서 그랬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서사적 공통성도 옅어 보이는 이 영화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여성 주연 영화라는 것이다. 여성 주연이면 아무리 유명 배우를 동원하고 시나리오의 질이 좋아도 영화가 만들어지기 힘들다는 사실은 이미 영화계 인사들의 숱한 고발로 증명된 바가 있다.

여성이 사라진 영화판에 그들은 주체성이 사라진 도구적인 역할로서 유일하게 위치될 수 있었다. 여성이 삭제되는 사회를 축소해 놓은 듯한 영화계에 여성 관객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영혼 보내기’는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태동했다. 관객들은 여성 주연 영화를 반기며,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항의의 메시지를 이를 통해 주장하는 것이다. 또 다른 연대의 탄생이다.

지난해 한국 영화에 대중이 질려버린 현상이 구습을 되풀이하는 폐쇄적인 영화 환경에서 기인한다는 논지의 오피니언을 게재한 적이 있다. 당시 개봉한 ‘공작’이라는 영화를 예시로 들었는데, 평단의 극찬을 받은 영화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에 발길을 끊은 관객들의 움직임이 이 영화와 관련되어서도 보였다는 점에서 ‘보지도 않고 질린’ 대중의 반응은 유의미한 평가 대상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걸캅스’를 ‘보지도 않고 응원하는’ 반응 역시 유의미하게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완성도를 고려하지 않은 맹목적인 소비가 영화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일각의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여타 상황에도 적용되는 문법이지만 선택은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야만 의미 있다. 영화든 관객이든 여성으로서의 선택지가 전무한 현 상황에서 완성도를 고려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영혼 보내기의 핵심은 그렇게 해서라도 선택지를 확보하여 기본적으로 여성이 설 수 있는 기반이라도 마련하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맹목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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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 역시 ‘남초(남성 중심)’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걸캅스가 개봉하기 전부터 여성 주연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전투태세에 가까운 열렬한 기대와 지지를 표했던 여초 커뮤니티와 반대로 남초 커뮤니티는 수시로 영화에 대한 조롱을 일삼았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뻔함’에 대한 조롱을 비롯하여 흥행의 부진을 예상하는 여론은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심지어 여초 커뮤니티의 영혼 보내기 문화를 비웃는 여론도 등장했다. 개봉 후 실관람객들의 긍정적인 후기와 ‘영혼 보내기’를 필두로 한 적지 않은 관객 수 동원이 기존의 부정적인 여론을 다소 잠재우기는 했지만, 여전히 영화를 희화화하는 행위는 집단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시 공동체적으로 공유하는 메시지가 존재한다고 해석된다.

남초 커뮤니티의 중심 여론이 영화를 비판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우선, ‘남성 혐오’ 영화라는 이유다. 남성 카르텔로 인해 발생하고 또 가볍게 여겨지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여성 형사가 나서서 해결을 한다는 내용이 남성에 대한 지나친 일반화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젠더의 불평등성에서 비롯되는 디지털 성범죄는 젠더 구조의 우위에 있는 남성 일반에 대한 지적이 불가피한 범죄 유형이다.

여성을 쾌락의 도구로 보는 대부분이 남성인 수요자와 범죄를 성적 취향으로 포장하며 묵과하는 남성 중심 사회,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 속에서 피해받는 여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공권력의 불성실함이 주체가 되어 디지털 성범죄를 배양했다는 사실은 최근 발생한 ‘버닝썬’ 사건을 통해서도 이미 명명백백히 드러난 바 있다. 늘 혐오의 대상이었던 여성이 기득권적인 혐오의 주체에 반하는 영웅적 서사를 남성 혐오라는 허구적 개념을 통해 평면적으로 격하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 서사를 남성의 시선으로 환원하는 지나친 일반화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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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경찰을 미화한다는 지적도 눈에 띈다. 여성 경찰 무용론이 지배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남성 경찰을 깎아내리고 여성 경찰을 영웅시한다는 점에서 현실과의 괴리를 보인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 역시 여성 혐오적 시각을 다분히 포함한다. 여성 경찰이 ‘무용’하지 않음에도, 오히려 더욱 여성 인력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현직 종사자가 입을 모아 증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초 커뮤니티는 여성의 전문성을 비하하여 사회에서의 여성을 삭제하는 기존의 여성 혐오적 관습을 그대로 답습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걸캅스에 대한 조롱은 최근 발생한 ‘대림동 여경’에 대한 비난과도 궤를 같이 한다. 주취자가 경찰에게 폭력을 가한 상황에서 옆에 서 있던 여성 경찰이 그를 직접 제압하지 않고 지원을 요청하는 영상이 공개되자 여성 경찰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여론이 불길같이 번졌다. 주취자 제압은 남성 경찰도 마찬가지로 어려워하며 동료 경찰이 폭행을 당했을 때는 지원 요청을 하는 것이 정식 매뉴얼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여성의 전문성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 굳건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수많은 범죄를 방관하고 조장한 것이 다름 아닌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과 그들을 비호한 남성 카르텔이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내내 사회면을 차지했을 때도 '남경 무용론'은 대두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공교롭게도 남초 커뮤니티는 이 사건을 ‘대림동 걸캅스’라고 조롱하며 ‘짤방’으로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남초 커뮤니티의 ‘걸캅스’에 대한 집단적 조롱은 사실상 여성에 대한 반(反)페미니즘적 비난으로 읽힌다. 여초 커뮤니티의 전투적인 지지에 대한 반동적인 심리가 이에 가담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게시물과 댓글을 통한 조롱이나 ‘별점 테러’에서 그치는 이들의 가벼운 행동력은 집단적 행위의 기저에서 공유되고 있는 여성 혐오에 심각한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남성 공동체가 여전히 기득권에 안전히 속해있음을 드러낸다. 문화에 숨은 구조적인 문제를 기민하게 간파하고 그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소비를 통해 표출하는 여성 공동체의 결집이 상대적으로 비장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이 남성을 혐오해서가 아니라, 남성 기득권에 의해 안전을 박탈당한 혐오의 타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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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은 여성이다. 실제로 여성 영화가 많아지고 있다. 여성 배우들이, 제작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변할 것 같지 않던 한국 영화계에 의미 있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영화계는 여성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하며, 주체적인 여성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코드를 의도적으로 집어넣어 흥행을 유도한다는 '페미코인'이라는 조롱 섞인 신조어의 등장은 어쨌든 소비자로서의 여성의 입지가 생산 환경에 영향을 미칠 만큼 막강해졌음을 의미한다. 영화에 대한 수요를 주장하는 행위로서는 예매율보다 실관람객을 늘려 문화적 영향력을 증대하는 편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제 시작 단계에 들어섰을 뿐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논의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확장된 공론장이다. 영혼으로라도 함께하는 진실된 연대가 지속된다면 이 역시 가까운 미래에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선택지는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남초 커뮤니티를 비롯하여 반페미니즘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특정 다수의 ‘걸캅스’를 향한 가벼운 행동력은 사실상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여성 공동체가 작금의 두려운 현실을 연대로 극복해나가고 있다면 이들은 (차별적으로) 안전한 현실에 진보적 균열을 일으킬 연대를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다. 여성은 더 이상 도구나 수단이 아닌, 소비를 할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연대하여 균열을 낼 수 있는 주체이다. 여기서 퇴보하는 자는 누구인가. 미래는 진보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만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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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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