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꿈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기타]

글 입력 2019.05.23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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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집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지냈다. 이사를 적지 않게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세어보니 얼추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한 숫자이다. 그런데 어느 숫자 이후부터는 계속 한 동네에서만 있었다. 가까운 위치의 새집을 알아보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가족은 계속해서 예전 집들을 마주 보며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그리고 이 집에서 셈은 멈췄다. 앞으로도 계속 이사를 다닐 것이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이 집을 다시는 떠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햇수를 세워 보니 벌써 10년이다. 내가 이 집에서 10년을 보냈다. 내가 그날 이후로 열 살이나 먹었다는 사실이 실로 아득하고, 떠오르는 하루하루의 기억들을 모두 합치면 10년으로 뭉뚱그려진다는 사실 또한 아득하다. 내 머릿속에 10년이라는 세월이 하나의 공간을 배경으로 그득하다. 내가 이 벽지를 10년이나 보았다니.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선명하지 않은 벽지의 상태 또한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적지 않지만, 나는 이 집으로 처음 이사 온 날의 분위기를 전부 기억한다. 나만의 방이 처음 생긴 순간이었고, 그 전보다 넓은 집이었고, 내가 외관이 아닌 집의 내부를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이었다. 나는 그날 소파를 어느 방향으로 배치했는지, 나만의 새 가구는 어느 시간대에 배송되었는지, 가구를 옮겨주신 기사님들께 엄마는 어떤 음료를 건네 드렸는지, 우리집의 이사를 누가 도와주었는지를 기억한다.


무엇보다 거실 한 켠에 난 화장실이 정말 밝았다. 화장실치고는 긴 창이 한 쪽 벽면을 채우고 있어 오전에는 하얀 햇빛이 들고, 오후에는 주황빛 해가 보인다. 그게 첫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장실의 긴 창을 틀로 하고 흰 눈들이 쏟아지는 장면 또한 머릿속에 들어있다. 사실 첫눈 오는 순간까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온 집안을 휩쓸고 다니던 13살은 결국 화장실의 긴 창문에 머무른 채 하늘에서 내려오는 첫눈을 감상했을 것이다. 그곳이 건물 없는 맨 하늘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그때는 미세먼지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13살이던 그 무렵에는 우리 집이 정말 커 보였다.

 

지금은 네 가족 모두 그때보다 몸집도 커지고 경험도 자라서 이만큼 작은 집이 없다고 느껴진다. 들어차는 가구들은 놓일 구석이 부족하고, 가구들은 교체가 되고, 오빠는 군대에 갔고, 나는 오빠와 방을 바꿨다. 그리고 침대도 버렸다. 방이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푹신한 이불을 깔고 바닥에 누우면 천장과 함께 10년을 함께 한 책상과 옷장이 시야의 범위로 들어온다. 내가 이 방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자리해 있다. 그것에서 아늑함을 느꼈다. 하지만 역시나 너무나 좁다. 그래서 그런 꿈을 꿨는지도 모르겠다.


*


꿈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자세히 보니 얼마 전에 이사를 해 자주 놀러 간 친구네 아파트였다. 친구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다니. 이제 마음껏 그 친구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을 말로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기분으로 느껴졌다.


내 방은 친구의 방과 동일한 위치의 그것이었고, 인테리어는 깔끔했다. 그리고 이후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데, 문이 뭔가 이상했다. 새 집 치고는 너무 낡은 느낌이었다. 다시 보니 전에 살던 집의 문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우리집의 문이 새 집에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굳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 집인데 낡은 화장실의 문을 그대로 들고 가 끼워 넣은 이유를 나로서는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게 아마 꿈 속 내내 처음으로 들뜬 마음이 가라앉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생각난건데, 새 집의 화장실은 밝았지만 그곳에 창문은 없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나는 계속해서 넓은 집을 꿈꿔왔고. 그 꿈이 이루어졌고, 심지어 친구와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앞으로에 벌어질 일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기대될 것이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바깥으로 나왔다. 왜인지 미세먼지도 느껴지지 않았고, 형형색색의 놀이터와 녹음이 진 아파트 단지를 지나쳐 걸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낯선 골목길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고 있음을 느꼈다. 그건 단지 낯설음에 대한 긴장된 감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걷다 보니 떠오른 건데, 그곳에는 내가 자주 다녔던 녹음이 진 산책로가 없었다. 집 앞 3분 거리에 있던 고수부지 산책로가 그곳과는 너무나도 멀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곳이 그리워졌다. 작지만 푸르른 산책로가 있던 낡은 이전 집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가, 푸르른 나무들이 가득한 산책로를 노을이 질 때까지 걷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곳이 더 더 그리웠다.


*


그리고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깬 당장은 꿈 속 내용이 쉽게 머리에 잡히지 않는다. 오직 감정만이 남아있다. 무언가가 정말 그립고 아쉬운 느낌을 지닌 채 잠에서 깼다. 찝찝한 기분이었다. 내 스스로가 웃겼다. 나는 한 번도 이 곳을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보던 풍경과 새로울 것 없는 곳, 편리하지 못한 낡은 화장실과 산책하러 나갔다가 미세먼지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작은 고수부지를 그리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그 꿈에서 나는 그것들을 모두 그리워했다. 그 상황이 너무 웃기고 어이가 없어서 한참 동안 멍했던 것 같다. 내가 이것들을 이만큼이나 사랑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리고 정말 이사를 간다면 이곳이 너무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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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의 볕이 잘 드는 긴 창도, 내 방 바로 옆 종알종알 떠드는 어린이집 아이들의 데시벨도, 밤을 새고 일어난 아침이면 유독 노란색 빛이 들던 주방 창가도, 오빠 방과 맞바꾼 지금의 이 방도, 그리고 침대 없이 바닥에 그대로 누운 낮은 위치까지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녹음이 진 산책로의 나뭇잎의 스치는 소리들까지.

아주 소중한 것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떠나고 싶어 했던 이곳을 사실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있었고, 다행히도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비록 화장실 문은 너무 낡고, 벽지는 색이 바래가고, 가구들은 삐걱대고, 네모난 거실은 여전히 네 가족이 앉기에 너무도 작지만, 그건 내가 한쪽 눈만 뜨고 바라봤을 때의 이야기이다.

여전히 화장실 긴 창에는 볕이 잘 들어오고, 주방 창문 너머로는 북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어린이집 아이들은 여전히 기운이 넘치고, 집 앞 3분 거리에는 평화로운 산책로가 있다. 이곳이 나를 완전하게 편리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온전하게 평화롭게 만들어준다. 아마 이사를 간다면 정말 그립겠지? 그리고 늘 그렇듯 모든 순간이 그럴 것이다.

힘든 기억과 슬픈 감정이 난무하는 지금의 현실도 과거가 된다면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예전에는 그 이유가 시간이 흐른 만큼 그 기억에서 멀어져 여유를 갖고 바라볼 수 있어 행복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당시에는 좋았던 순간들을 알아 차리지 못했던 건 아닐까. 현재 내 앞에 놓인 괴로움과 막막함에 사로잡혀, 소중한 순간들에 눈길을 던지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아주 괴로운 하루 속에서도 행복한 순간들은 계속해서 존재한다. 내 눈이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당시에는 바라보지 못했던 행복들이 상자 속 담긴 물건처럼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라면서.

사실 우리의 일상 속 좋은 순간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단지 크기가 거대하지 않아서 집중하지 못했을 뿐. 행복이 우리의 곁에 있을 때 눈길을 주어야 한다. 행복이라는 기억 곁에 아쉬움과 그리움의 감정이 달라붙기 전에 말이다.

나의 볕이 잘 드는 큰 창과 좋아하는 마카롱 가게가 있는 이곳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책들로 덮여지는 머리맡 공간도 좋다. 어린이집 아이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도 싫지가 않다. 그리고 저녁 8시경,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뒤돌아본 풍경은 지금 이 시기만 볼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이다. 앞으로 이 풍경을 몇 년이나 더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현재 내 눈앞에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하늘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와 지금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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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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