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생충"과 "어느 가족", 한국과 일본의 가족이야기 [영화]

글 입력 2019.06.1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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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날 <기생충>을 관람하고 왔다. 평소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작품인 <어느 가족>을 인생 영화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기 때문에 바로 극장으로 갔다. 둘 다 가족을 다루었고,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비교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생충> : 한국 사회의 씁쓸한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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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기택(송강호)은 대만 카스테라 장사를 하다가, 방송의 여파로 문을 닫게 된다. 물론 방송에 대한 언급은 영화에서 없었으나,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대만 카스테라 장사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아이템이 유행한다 하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우후죽순 가게들이 생겨나는 일들, 르포 방송에 나왔다 하면 매출이 뚝 떨어지는 현상 등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나도 인형 뽑기, 식빵, 네컷 사진, 마카롱 등 수많은 가게가 똑같은 자리에서 생겨나고 짧은 시간 안에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불문학과 강의를 듣던 중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과 비교하면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이 유난히 강하다고 한다. 확실히 대학이나 직장의 서열화가 이루어져 있기도 하고, 높은 지위를 획득한 이들에게 공공연하게 분노나 부러움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기생충>에서 기우(최우식)가 과외를 대신하게 되는 것도 연세대학교 학생으로 위장했기 때문이고, 그가 대학을 가지 않은 것도 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다.

이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차별이 만연한 사회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제를 방문한 세계 각지의 영화인들로부터 ‘우리 사회에서도 저런 현상이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 만큼 보편적인 주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이러한 계층 갈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만한 사회적 안전망이나 조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하다. 그렇기에 기택과 문광의 가족은 ‘기생충’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가족> : 일본 사회의 사각지대와 가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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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의 이야기가 놀라운 점은 엽기적인 사건(부부싸움, 집 땅을 파서 시체를 묻는 사건, 아이를 납치해서 키우는 사건)이 옆집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리의 부모는 아이가 실종된 지 2달이 되도록 실종신고를 하지 않았다. 57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실화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기생충>이 불합리한 시스템을 이용하고 기생하려는 개인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렸다면, <어느 가족>은 분명히 약자의 편에 서서 사회를 고발한다. <어느 가족>에서 유리는 결국 자신을 때리는 엄마와 아빠의 곁으로 돌아가게 된다.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신분을 속이고 살아가는 살인자들보다 친부모들이 아이를 당연히 맡아야 한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이 가족을 지켜본 사람으로서는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주말, 자꾸만 아픈 몸을 이끌고 수많은 반찬을 만들어주시는 할머니께 아버지가 볼멘소리로 제발 그만 좀 하시라, 도대체 이러는 어머니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할머니께서는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 부모는 자식에게 평생 가도 갚지 못할 빚을 계속 갚는 것과 다름없이 끊임없이 사랑을 줘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이처럼 (혈연을 기반으로 한) 가족 내의 조건 없는 희생과 사랑은 문화를 막론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 사회는 특히 자녀의 독립이 늦는 편이고, 독립 후에도 원 가족과의 관계가 긴밀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느낀다.

<어느 가족>은 이 견고한 믿음에 질문을 던진다. 가족이라면 받는 것 없이 주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고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다 같이 조금씩 가난해지는 `워크 셰어`처럼,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말고 다 같이 조금씩 맞춰가며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족이 아닐까?




가난한 가족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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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 가족>의 원제는 `도둑질 가족`으로, 도둑질하며 살아가는 대안 가족이 주인공이다. 누구도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지만, 그들은 가족만큼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영화인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도 배다른 자매가 등장하는데, 그 영화가 동화였다면, 이 영화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도둑질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꿈이 아니다. 연금이 꼬박꼬박 나오는 할머니(기키 키린)의 집에 붙어살면서, 생필품이나 먹을 것을 조달하는 것이 전부다. 심지어 아이들을 제외한 모두가 직업이 있어, 굳이 도둑질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산이 거기에 있으니 오르는 것처럼, 물건의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훔치는 것뿐이다.

이들과는 대조적인 삶을 보이는 것이 할머니의 전남편의 아들 가족이다. 할머니가 전남편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집을 방문할 때마다 3만 엔(한화 약 30만원)을 건네는 아들 가족은 언뜻 보기에는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외국에서 지내고 있다는 그 가족의 첫째 딸은 사실 집을 나와 `도둑질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살며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중이다. 또 맨션(우리나라의 아파트에 해당하며 단독주택보다 비싸다)에서 사는 유리(사사키 미유)의 가족은 사실 유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경제적 부유함과 행복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생충>도 마찬가지의 주제를 다룬다.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가족은 대안 가족이 아닌 실제 가족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나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함께 범죄를 모의하고, 나름대로 화목한 일상을 살아간다. 가족보다는 <도둑들>, <기술자들>처럼 범죄를 모의하기 위해 모인 조직으로까지 보인다. 박사장(이선균)의 가족이 캠핑을 떠난 후에 비로소 주택을 차지하자 그들은 비로소 가족처럼 웃고 떠든다.

박 사장의 가족도 행복해 보이기는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GV를 통해 직접 밝힌 바로는 엄마인 연교(조여정)는 다송이를 끔찍이 여기면서도 살가운 스킨십을 하지 않는다. 첫째인 다혜는 집안에서 계속해서 소외당하는 모습이 보이고(채끝살을 넣은 짜파구리를 끓여주지 않는다), 부부관계는 어쩐지 다정한 느낌이 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식상한 테마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기생충> 속 대사처럼 `부자인데 착하기까지 하다(부자는 원래 착하지 않다)`라는 메시지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으며,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가족 전부가 백수인데, 어떻게 저렇게 사이가 좋을 수가 있느냐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기택의 가족을 개개인의 관계가 아닌 가족 단위로 바라보면 ‘가난하지만, 행복하고 착한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다른 사람을 조롱하고 이용하며, 심지어는 비슷한 처지의 문광의 부탁도 저버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마냥 비판할 수만은 없는, 복잡미묘한 상황이 영화 내내 쌓이고 쌓여,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것인가`하는 심정으로 영화관을 나오게 된다.



어둡고 좁은 공간이 주는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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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그간 <괴물>, <살인의 추억>, <마더>에서 좁은 공간을 안식처로 묘사해왔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참고) <괴물>은 가족이 살아가는 매점, <살인의 추억>은 두만(송강호)의 여관방, <마더>에서는 고속버스와 이불 속이 그렇다.

<기생충>에서는 기택 가족이 살아가는 반지하 방보다는 근세(김명훈)가 살아가는 지하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반지하 방은 어쨌든 반쯤은 넓은 세상과 이어져 있으므로 홍수가 나고, 노상방뇨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반면 지하실은 충숙(장혜진)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빚쟁이들도 찾지 못하고, 문광(이정은)이 가져다주는 식량으로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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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주워온 것들로 가득차 발 디딜 틈 없이 좁은 <어느 가족>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집도 그렇다. 밖은 오사무(릴리 프랭키)가 사고를 당하고, 노부요(안도 사쿠라)가 실직을 하고, 유리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추위에 떠는 공간이다. 밖에서 어떤 일을 하고 돌아오든 집에 오면 서로에게 한없이 살갑고 따뜻하게 정을 나눈다. 강변에서 하는 불꽃놀이를 볼 수는 없어도, 이 집에서는 안전하다. 답답하게 느껴지는 쇼타의 벽장도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여배우의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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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영화의 줄거리보다는 배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두 영화는 공통으로 여배우들의 활약이 엄청나다. 여태껏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로 활약해 온 송강호 배우에게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이정은 배우나 장혜진 배우, 두 어머니 역의 연기가 엄청났다. 특히 이정은 배우는 전작에서는 보지 못했던 광기 어린 집착과 에너지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어느 가족>에서도 힘없는 가장을 연기한 릴리 프랭키 배우도 훌륭했지만, 영화에서 단연 눈에 띄는 배우는 안도 사쿠라와 기키 키린 배우다. 사실 영화를 처음 관람했던 작년 여름에는 일본 영화를 몇 편 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을 정도였다. 기키 키린 배우는 <걸어도 걸어도>에서 보여준 의뭉스러운 할머니를 다시 한 번 연기했기 때문에 그다지 충격적이지는 않았으나, 안도 사쿠라 배우의 경우 자칫하면 신파로 느껴질 수 있는 장면조차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실로 연기도 예술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안도 사쿠라 배우가 연기한 노부요라는 캐릭터는 유일하게 ‘도둑질 가족’을 진짜 가족으로 여기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오사무처럼 쇼타에게 ‘아빠’라는 호칭을 불러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돈으로 이어진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돈이냐 가족이냐를 물었을 때 가족을 택했고, 결말 부분에서도 가족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다. 유리가 보나 마나 다시 가정폭력을 당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친부모에게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안타깝게 받아들이면서도, 결국 혈육이 아니라면 어떠한 것으로도 사랑을 증명할 수 없다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쇼타에게 친부모의 존재를 알린다.

굳이 여성과 남성 배우를 구분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의 어머니라는 캐릭터를 맡았고, 또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는 점에서 꼭 따로 언급하고 싶었다.



낭만적인 현실이란 없다 - 두 영화의 현실적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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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영화의 결말은 아주 냉정하고 현실적이다. <기생충>은 마지막에 박 사장의 집으로 들어가 기택을 지하실에서 꺼내는 것으로 끝나는가 싶더니, 다시 반지하 방에서 편지를 쓰는 기우를 비춘다. <어느 가족>도 쇼타(죠 카이리)를 제외하고는 행복한 결말을 맞는 이가 없다.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가야 하는 현실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슬픈 결말을 마주하고 나면,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타인의 불행이 기쁘거나 안도감을 줘서가 아니다. 내가 겪는 고통이 아주 당연하고, 본질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한 결말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돌아서면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비극적 결말이다.

두 영화 모두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예상치 못한 전개로 관객들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적 재미도 가진 작품이다. 이번 기사를 쓰기 위해 <어느 가족>을 두 번째로 관람했다. <기생충>도 ‘N차 관람’에 참여할 예정이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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