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상의 빛-고인 것과 흘러가는 것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름다운 데뷔작
글 입력 2019.06.1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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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면 곧 폭풍우가 칠 징조라고 한다. 인생은 우리의 삶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걸 싫어하는게 분명해 보이듯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곤 한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예측할 수 없던 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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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었다. 유미코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한다. 갓난아기와 젊은 부부는 넉넉하진 않아도 무난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여느 날과 비슷하던 어느 날, 남편은 철로 위를 걸으며 죽음을 선택한다. 주변 사람들 또한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유미코에게 묻는다. 정말 이상한 낌새가 없었느냐고.

몇 년이 지난 후 유미코는 동네주민의 주선을 통해 시골 바닷가에 사는 타미오와 재혼을 하게 된다. 잔잔하고 별일 없이 흘러가는 바닷마을의 일상에서 유미코는 과거로부터 덤덤해 진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남동생의 결혼식 때문에 들른 옛 동네에서 전남편 이쿠오의 흔적들이 떠오르며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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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코의 마음은 바다와 같다. 아무리 고요해지려 해도 끊임없이 파도가 친다. 누군가 돌을 던지거나 바람이라도 불면 의지와 관계없이 물결이 인다.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바닷마을에 막 이사온 유미코에게 새로운 남편 타미오는 이렇게 말한다.


"바닷물 소리가 요란하죠? 처음엔 시끄러워서 못 잘지도 몰라요."



유미코는 전남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보이면서 동시에 그를 잊고 싶지 않아 보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은 계속 유미코를 따라다닌다. 어렸을 적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고향에 가서 죽겠다며 떠나던 걸 강하게 붙잡지 못해 결국 할머니를 잃어버린 기억 또한 끊임없이 꿈에 등장하며 그녀의 죄책감을 상기시킨다.

그때 할머니를 붙잡았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정말로 남편이 자살 전 징조를 보이지 않았었을까, 단지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아닐까. 이쿠오를 잊음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내가 과연 그를 잊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하는 죄책감이 하루하루를 휘감으며 혼란스러워 한다. 그렇게 떠나야만 했던 그를 향한 원망도 함께.

간신히 평형을 유지하는 척 하던 유미코는 전남편의 흔적들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꽁꽁 숨겨오던 감정들이 뒤 섞여 그녀 자신조차 알 수 없는 마음인 듯 보인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타미오에게 그녀는 화를 낸다. 전 부인을 잊지 못하고 그렇게나 사랑했으면서 왜 자신 같은 여자와 결혼을 했느냐고.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느냐고.

그러나 유미코는 정말 타미오에게 화를 내는 것 같지 않다. 그녀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이쿠오를 놓지 못하고 그녀의 삶에서 떠나 보낼 수가 없는지 절망하며 그의 죽음의 이유에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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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후반부는 마을의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장례행렬을 유미코가 홀린 듯 멀찍이서 뒤 따르는 장면을 비춘다. 그녀는 이쿠오의 죽음의 본질에 다가가고 싶어하듯 죽음의 행렬을 묵묵하게, 그러나 멀찍이 떨어져 보이지 않는 표정처럼 모호하고 강렬한 감정을 안고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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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이 끝난 뒤 유미코는 자신을 찾으러 온 타미오에게 털어놓듯 묻는다.


“난……정말 모르겠어. 그가 왜 자살을 했고 왜 철로 위를 걷고 있었는지. 그런 거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게 돼. 그 사람이……왜 그랬을 거 같아?”

“바다가 부르는 것 같았대. 아버지가 전에는 배를 탔었는데, 홀로 바다 위에 있으면 저 멀리 아름다운 빛이 보였대. 반짝반짝 빛나면서 아버지를 끌어당겼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 말을 들은 유미코는 태워지고 있는 죽음의 흔적을 등지고 묵묵히 타미오를 따라 돌아간다. 그렇게 돌아온 그녀는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인다.

*

영화 속 시간은 마치 두 개인 것 같아 보인다. 언제 어디서나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가고 있는 현재의 시간과 이쿠오의 죽음에 고여있는 유미코의 시간. 고여있는 감정들은 물길을 터 흘러가게 해주지 않는 이상 계속 그 자리에서 썩어가기만 한다.

썩은 물의 냄새가 고약해질수록 감정의 날파리들이 달라붙는다. 스스로 털어내기 전까지 그들은 떠나지 않는다. 삶의 모든 부분이 납득이 되는 이유를 가지고 오지는 않는다. 나의 탓이 아님에도 이유를 붙이지 못하게 만드는 모호함은 자책과 슬픔을 데려와 원망을 향해 깊어진다.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환상의 빛은 남겨진 자들에겐 평생 이해할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일지 모른다. 왜 이쿠오가 자살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영화 안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유미코의 시선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이러한 징후를 알아차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남은 자들은 늘 자책한다.

그러나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는 떠난 자들만이 계속 고여있을 뿐 남은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본래 나의 것이 아닌 감정들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 때로는 흘려 보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들이 환상이 아닌 진짜 빛을 볼 수 있다면, 그 빛을 따라갈 수만 있다면 좋은 계절을 기다려 볼 수 있지 않을까.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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